소개
어젯밤, 넷플릭스에 새로 뜬 **<폐병원 살인사건>**을 밤새워 다 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저는 좀비처럼 앉아있네요. 피곤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폐병원’이라는 제목을 보고 별 기대 안 했습니다. ‘또 뻔한 공포 스릴러겠지’ 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는 제 뒤통수를 아주 세게, 그리고 영리하게 후려쳤습니다. 오늘은 이 드라마가 남긴 지독한 후유증에 대해, 그리고 왜 제가 밤새 잠 못 들고 이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두서없는 고백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1. 시작은 뻔했지만, 그 ‘냄새’가 달랐다
솔직히 1화 초반부는 좀 지루했습니다. 돈에 눈이 먼 공포 유튜버들이 낡은 폐병원에 몰래 들어가는 설정. ‘아, 또 이거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왜였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폐병원의 풍경이 제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 할머니 댁의 낡은 창고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습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지만, 제게 그곳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농기구들, 그리고 빛이 닿지 않는 과거의 시간들이 뒤엉킨 미지의 공간이었습니다. 무서운데, 이상하게 자꾸만 문틈으로 안을 엿보고 싶었던 그 기분. <폐병원 살인사건> 속 ‘은성 정신병원’이 제게 딱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폐병원은 단순히 귀신이 튀어나오는 공포의 집이 아닙니다. 녹슨 휠체어, 곰팡이가 핀 환자 기록, 복도에 흩어진 낡은 신발 한 짝. 감독은 이 모든 것을 공포의 소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멈춰버린 ‘기억의 증거’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프 스케어 하나 없이도,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감만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잊혀진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병원 벽지의 얼룩처럼, 복도의 먼지처럼 공간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공간이 말을 건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요. 저는 그때부터 이 드라마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그냥 흉가가 아니라, 거대한 무덤이었구나.
2. 가장 말이 안 통하는 두 사람이, 가장 절실한 파트너가 될 때
주인공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저는 속으로 ‘아,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 꼬장꼬장한 늙은 형사와, 돈과 관심을 위해 뭐든 하는 철없는 공포 유튜버의 조합이라니. 또 서로 무시하고 싸우다가, 마지막에 억지 감동으로 화해하는 뻔한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죠. 대학 시절, 정말 말도 안 통하고 생각의 회로 자체가 다른 사람과 억지로 팀 과제를 해야 했던 그 지긋지긋한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아팠습니다. 드라마 초반은 제 예상대로였습니다. 형사는 유튜버의 말을 ‘헛소리’ 취급하고, 유튜버는 형사를 ‘꼰대’라고 비웃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단 1밀리미터도 이해하려 하지 않죠. 저는 그 불편한 관계를 보며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최악의 조합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졌습니다. 형사의 논리와 증거만으로는 절대 풀 수 없었던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유튜버의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인 ‘기운’이 툭 건드려줍니다. 반대로 유튜버가 느꼈던 정체불명의 공포는, 형사의 냉철한 추리를 통해 비로소 의미 있는 ‘단서’가 되어가죠. 이건 그냥 억지 공조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같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데이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비극들.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로 우리에게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비합리적인 공감의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두 사람의 서툰 협력이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지금 내 옆에서 나와 가장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그 사람이, 나를 완성시켜 줄 마지막 퍼즐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범인이 밝혀졌을 때, 나는 안도하지 못했다
드라마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저는 더 이상 병원에 떠도는 귀신들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무서워진 건, 병원 안에 함께 갇힌 살아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을 반쯤은 진부한 클리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말이 얼마나 뼈저린 진실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자, 어제까지 웃으며 함께 방송하던 동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 미세한 눈빛의 변화, 자기만 살기 위해 내뱉는 이기적인 말들, 그리고 작은 식량 하나를 두고 벌이는 암투. 귀신은 차라리 정직하게 나타나기라도 하는데,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악의는 정말이지 예측이 불가능해서 더 소름이 돋았습니다. 특히 한 인물이,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몰래 다른 사람의 가방에서 물을 훔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을 보는데, 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솔직히, 저 역시 그러지 않으리라고 100%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무서웠습니다. 결국 감독이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지옥은 귀신이 나오는 폐병원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과 공포라는 이름의 지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저는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 대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씁쓸함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마무리
결국 저는 아직도 이 드라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신작, ‘폐병원 살인사건’**이 남긴 것은 명쾌한 결말이 아니라, 제 마음속에 던져진 아주 찝찝하고도 묵직한 질문들이거든요. 뻔한 공포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제 안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기셨다면… 부디 마음 단단히 먹고 보시길 바랍니다.